240227 
무엇이든 괜찮으신 분만 읽어주세요.

인용한 영화: Knockin' on Heaven's Door (1997)

쓰면서 들었던 곡: yume 2kki ost - rainy apartments 




7월 7일, 토요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장마 기간 중 드물게 갠 기후였다. 바람에 달콤한 풀 향기가 섞이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렇게 좋은 날 기적적으로 손에 넣은 24시간의 휴가를……정하성은 단 한 명을 위해 쓰고 싶었다. 쓸데없이 거창한 계획을 세우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르니까, 타인이 하는 것처럼 평범한 데이트를 구상했다. 금요일 저녁. 그는 영화를 예매하고, 현대미술 전시회의 표를 사고, 레스토랑의 테라스석을 예약했다. 다음으로 플랜을 상대에게 전했다. 김기려는 불만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무표정한 낯에 일순 기대가 스쳤다. 전시회에 가본 적 없다는 기려의 말을 듣고서 하성은 조금 의아해졌지만, 두 사람 모두 내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일은 왔다.


평온이라는 글자를 뽀얗게 반죽해서 하늘에 둥둥 띄워 놓은 것 같은 하루. 오늘이라면 도시의 어떤 부분을 잘라내도 영화 속의 한 장면 같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두 사람에게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후 2시쯤 영화관에 입장했다. 그 순간 환영식이라도 열어 주는 것처럼 건물 옥상에서 A급 게이트가 발생했다. 첨예한 협동과 전략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현실로 돌아오니 7시간 경과. 공교롭게도 같은 빌딩의 꼭대기 층에 갤러리가 위치해 있었으니, 작품 손상을 막기 위해 전시회는 중단되었다. 식당 예약 시간도 지나버렸다. 두 사람은 기자들에게 시달리며 도망치듯이 주차장으로 향해 간신히 하성의 승용차에 올랐다. 

"죄송합니다."

"우리 탓이 아닌걸."

"그래도……."

"내가 저녁 만들게. 영화는……집에서 보면 되지 않아?" 운전대를 잡는 동시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지하 주차장의 조명은 캄캄했다. 하성은 기려가 이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자신을 위로해 주려고 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얼마 후 정성스럽게 차려진 식탁을 마주하는 동안 그런 잡념은 옅어졌다.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돌아왔을 때, 기려는 소파에 두 발을 올리고 웅크린 채로 TV의 영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

"이거 볼 겁니까?"

"응, 하고 있길래."

OTT 서비스에 연결하지 않고, 굳이 중간 광고 시간을 견디는 이유가 의문스러웠지만 하성은 굳이 질문하지 않았다.


1997년 작품이다. 모든 것은 비자발적 불행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미 늦었어. 며칠 남지 않았어.」 따뜻한 노란 빛이 가득한 병실에서 생명은 죽어간다. 시한부에 처한 주인공 두 명이, 데킬라를 마시며 대화한다. 

「나는 바다를 본 적이 없어.」

「진담은 아니겠지? 바다를 한 번도 못 봤다고?」

「응, 단 한 번도.」

「우리는 지금 천국의 문 앞에서 술을 마시는 거야. 세상과 작별할 순간이 다가오는데 그런 걸 못 봤단 말이야?」

「정말이야. 본 적이 없어.」

「천국에 대해서 못 들었나? 그곳엔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어.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을 얘기할 뿐. 물속으로 빠져들기 전에 핏빛으로 변하는 커다란 공.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그 강렬함과 세상을 뒤덮는 바다의 냉기를 논해. 영혼 속의 불길만이 영원하지…….」


일언반구도 없이, 두 사람은 영화를 시청했다. 실내는 점차 어두워지고 희미한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렸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게 되고, 숨소리가 옅어지고, 암흑 속에서 푸르게 발광하는 화면만이 진짜 세계인 것처럼 그 너머에만 시선을 던졌다.


결말에 접어들기 전, 하성의 왼쪽 어깨에 기려의 뺨이 툭 닿았다. 상대가 죽은 듯이 눈을 내리감는 동안, 그는 홀로 긴 서사의 결말을 목격했다. ……그들은 수많은 역경을 넘어 바다에 도착한다. 해가 지는 것인지 뜨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혼탁한 하늘 아래 끝없는 물결이 펼쳐져 있다. 꿈처럼 반짝이지 않는 파도 앞을 거닐며, 함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수평선을 바라본다. 말없이.

그리고 한 사람이 쓰러진다.

남은 이는 그 옆에 앉아 자리를 지킨다.

현상은 가속될 뿐, 아무도 울지 않지만, 슬픔은 진작에 있었다. 절망과 행복이 뒤섞여 물거품이 된다.


크레딧이 올라간다. 




7월 8일, 일요일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나는 정오가 되어서야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했다. 토요일에 실패한 계획을 되돌릴 생각이었다.

가까운 미술관에 즉흥적으로 찾아가서 마침 열려 있던 프로그램을 관람했다. 실내가 한적했기에, 공간을 도는 내내 거실에 어떤 작품을 두면 좋을지 끊임없이 토론했지만 결국 고르지 못했다(애초에 작품을 판매하는 전시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날 예약했던 것보다 더 좋은 식당에 방문했다. 코스 요리와 함께 화이트 와인을 마셨고, 아무도 취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새로 개장한 공원에 찾아가, 넓고 깨끗한 시설을 만끽했다. 우리를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물에 젖은 구두를 끌고 영화관으로 간다. 상영관을 대여했기 때문에,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필름을 재생할 수 있다. "늘 감사합니다." 직원이 인사하며 문 쪽으로 안내한다. 맨 뒤편 자리에 앉는다. 시한부에 처한 주인공 두 명이, 데킬라를 마시며 대화한다. 

「나는 바다를 본 적이 없어.」

「진담은 아니겠지? 바다를 한 번도 못 봤다고?」

- 저거 가져올걸.

- 주류 반입은 금지일 텐데……게다가 방금도 마셨잖아요. 과음은 몸에 안 좋습니다.

- 안 죽어, 괜찮아.

망막에 각인되어 버린 장면들이 계속해서, 다시, 스쳐 지나간다. 이 현상은 마치 막을 수 없는 파도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역경을 넘어 그들은 마침내 바다에 도착한다. 해가 지는 것인지 뜨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혼탁한 하늘 아래 끝없는 물결이 펼쳐져 있다. 꿈처럼 반짝이지 않는 파도 앞을 거닐며, 함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수평선을 바라본다. 말없이. 그리고 한 사람이 쓰러진다. 남은 이는 그 옆에 앉아 자리를 지킨다. 바다와 푸른 하늘이 오버랩되며 익숙한 노래가 흐른다.

크레딧이 올라간다.  

- 재미있었어?

- 솔직히 말해서 즐거운 기분은 안 들지만,

- …….

-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네요.

최고의 86분을 완성하기 위해, 수십 년을 노력했을 사람들의 이름이 화면 뒤로 사라지고, 상영이 종료된 이후에도 실내의 불빛은 밝아지지 않는다. 미리 그렇게 부탁했으니까.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로 향한다. 

정처 없이 걷다가,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두 잔 주문한다. 아늑한 실내에서 잔이 빌 때까지만 대화한다.

모든 일정을 마치면 걸어서 두 사람의 집으로 돌아간다. 우산은 쓰지 않는다.


「그곳엔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지.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을 얘기할 뿐.」


세계는 천국이 되었다. 이곳은 더없이 평화롭고 안락하다. 우리는 타인을 지킬 필요가 없다. 아름다운 낙원에서 우리의 영혼은 불멸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그 강렬함과 세상을 뒤덮는 바다의 냉기를 논해. 영혼 속의 불길만이 영원한 거야…….」


나는 현관문을 연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너저분하게 흩어진 생활 쓰레기와 옷가지, 더는 작동하지 않는 가전제품, 낡아빠진 서적들, 바싹 말라 지워지지 않는 혈흔, 분노를 이기지 못해 깨트린 물건의 파편 위를 그대로 짓밟으며 부엌에 들어선다. 알코올과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밖에 들지 않은 냉장고에서 어렵사리 생수를 꺼내서 마신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천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아낸다. 옷을 갈아입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가,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 나온다. 다른 공간으로 향한다. 그곳은 매우 청결하고 가지런하다. 모든 물건들에 먼지가 하얗게 쌓여 있지만, 그 분자 하나하나까지 보존하는 것처럼 사람의 손이 간 흔적이 없다. 

나는 침대에 쓰러진다. 호흡기에 불순물이 스며들고, 반사적으로 기침하다가 곧 가라앉는다. 카페인 음료를 두 잔이나 마신 것을 후회하며 눈을 감았다.

협소한 어둠 속. 크레딧이 겹친다. 


- 수천 년간 사자死者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기술은 셀 수 없을 만큼 발명되었지만, 요술 자체에 인격을 부여하는 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발상은 간단한 핵심에서 비롯되었다. 기적이라는 결과를 위해서는 시도 역시 환상의 영역에 속해야만 하며, 따라서 구현 대상은 마법과 혼연일치하는 편이 낫다고.

- 성공하지 않으리라는 가능성은 꿈도 꾸지 않았다. 오히려 목적한 바를 이뤘을 때, 성취감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헤맸다. 기뻐하거나 울음을 터트리는 기능을 사용하지 않은 지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 나는 영화의 결말을 알고 싶지 않았다. 픽션은 싫었으니까. 그래서, 잠들어버린 척 그의 어깨에 기댔다.

- 그는 상냥했다. 나를 깨우지 않고, 혼자서 죽음을 바라보았다.

- 결과……상대가 혼자서, 그 마지막 장면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도무지 알아낼 수 없었고, 결정적인 일부가 누락된 채로 최후의 술식은 완성되었다.

- 인간의 기술도, 이단자의 소망도, 결국 자신이 바라본 타인을 구현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과 나는 줄곧 거울을 든 채로 마주 보고 있었다. 손을 뻗기 전에 인연은 끝이 났다.


(지금은 나를 비춰줄 상대가 없고 오직 자아의 그늘로 떨어져 갈 뿐.)


- 잘 자.

- 네.

함께 누워 있던 사람은 웃다가, 그대로─사라져 버린다.

나는 녹음을 마치기로 한다.

- 가설 시험 실패. 입증 실패. 아무런 규칙도 알아내지 못했다. 반복할 프로세스 기존과 동일함……. 상영관을 변경할 것……그리고……. 그러니까 오늘이, 아.

- 7월 7일……6987년. 토요일. 기록 종료.



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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